2004-05-12 448
 
- 40계단 -
 
대표자 : 40계단
주 소 : 중앙동
문의처 : 없음
 
40계단은 오늘의 중앙동 4가 39-51번지에 있었다. 40계단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뚜렷하게 밝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중앙동「새마당」이 생겼던 때가 1908년 8월이라는 점에서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 뒤로 동광동 5가로 통하는 언덕 윗길에서 「새마당」으로 내려서는 계단길로 마련됐던 것으로 생각된다. 40계단이 아주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부산으로 찾아들어 피난살이하고 있던 피난민들 때문이었다. 그 무렵 40계단 일대에는 피난민들이 판자촌을 이루어 밀집해서 살고 있었다. 피난민들은 이 곳에서 시중에 흘러나온 구호물자를 파는 장터를 벌렸었다. 이 구호물자는 부둣길 주변에서 판자촌을 이루고 있던 피난민들이 바로 앞 부두에서 홍수로 쏟아져 들어오는 구호 물자를 훔쳐서 40계단 구호물자 장터로 내다 팔았던 것들이었다.

그래서 이때 "얌생이 몬다"는 유행어까지 생겼었다. 따라서 40계단 일대 구호물자 장터는 국제시장이 들어서기 이전의 '돗대기시장'과 마찬가지로 이름난 '돗대기시장'이 되기도 했었다. 일제강점기 때 '꼬치집'들이 많았던 곳으로도 이름나서 술꾼들이 즐겨 찾아 들었던 40계단은 한국전쟁 이후로 암달러상들이 줄을 지어 판치고 있던 곳으로 더더욱 이름나 있었다.

40계단이 더욱이 널리 이름난 곳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40계단 층층대에 기대앉은 나그네………"라는 노랫말로 시작되는 대중가요가 나돌고 널리 불리게 되면서부터였다. 이 노래는 피난살이의 고달픔을 읊은 것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40계단에서 영도다리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피난민들은 더러 40계단에 기대고 앉아 낮에는 영도다리를 바라보며 피난살이의 고달픔을 달랬었고 밤에는 부산항 북항에 정박해 있는 숱한 배들이 휘황찬란하게 밝히고 있는 불빛을 내려다보면서 향수를 달랬었다. 이와 같은 피난살이 설움이 40계단을 배경으로 해서 대중가요로 표현됐던 것이다.

40계단 기념관은 한국전쟁 당시 이산가족들의 상봉장소였던 40계단은 피난민들의 애환이 깃든 역사의 현장으로 그때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일깨워 주는 곳이다. 기념관은 중구 동광동 5가 44번지에 지상 6층 규모로 건물 5층과 6층에 광복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 부산의 시대상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공간을 마련하였다.

5층에는 피난민이 넘치던 한국전쟁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데요. 검정고무신과 양철물동이, 그리고 석탄난로 위에서 점심시간을 기다리던 알루미늄 도시락통, 물지게와 풀빵기계, 트랜지스터 라디오 등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게다가 40계단에 얽힌 향수와 애환을 지역원로와 문화예술인들이 목소리로 들려주는 옛날 전화기까지 있어 그 느낌은 더욱 생생합니다. 그리고, 6층으로 올라가면 이 지역에 거주했던 옛 일본인들의 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희귀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옛날 겨울나기 모습을 점토로 재연한 미니어쳐 앞에서는 행복한 추억에도 잠기게 된다. 또 '국제영화제의 산실, 중구의 극장'라는 특별전시 코너를 마련해 백 년 전부터 시작된 영화와 부산의 특별한 인연을 확인시키고 있으며, 실물의 영사기가 전시되어 있다.

3, 4층에는 복합문화시설 공간으로 다양한 문화시설로 꾸며져 있어, 도서와 DVD 등 문화정보자료와 50여석 규모의 영상시설을 갖춘 관람실 등 최첨단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한 전시회와 세미나를 열 수 있는 다목적실과 문화창작실, 그리고 주부 이용객들을 위한 어린이 놀이방까지 갖추고 있어 문화사랑방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 자갈치시장과 용두산공원 그리고 부산근대역사관, 민주항쟁기념관, 백산기념관 등과 함께 부산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각광받게 될 것이다. 관람시간은 하절기(3월∼10월)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11월∼2월)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관람료는 무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