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사 기념관은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72. 6. 26 지정)로 사당의 면적은 9만3천8백96 평방미터에 이른다. 오늘날의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충렬공 송상현을 모시기 위해 1605년(선조 38) 당시의 동래부사 윤훤이 동래읍성 남문 밖의 농주산에 송공의 위패를 모신 송공사를 지어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그 시초가 된다. 그후 1642년(인조 2)에 선위사 이민영의 청으로『충렬사』라는 사액이 내려짐에 따라 송공사는 충렬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1652년(효종 3)에는 동래부사 윤문거가 읍내의 선비들과 의논하여 당시의 사당은 좁고 저습하여 성문 가까이 있어서 시끄럽다는 점과 송상현 공의 학행과 충절을 후학의 사표가 됨으로 그 학행과 충절을 기리어 선비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들어 충렬사를 안락리의 오늘날의 충렬사 자리로 이전하면서 강당과 선비들을 수용할 수 있게 동·서재를 지어 안락서원이라 하였다.
1709년(숙종 35)에는 동래부사 권이진이 송상현과 정발이 순절할 때 함께 순절한 여러 사람을 모시기 위해 읍성 안에 있던 충렬사의 옛터에 따로 사당을 세우고 위패를 모시어 제사를 지냈다. 1766년(영조 42) 부제학 조엄이 임란 당시의 다대첨사 윤흥신을 충렬사에 합향할 것을 조정에 건의, 그 건의가 1772년 (영조 48)에 받아들여져 그 해에 충렬사 사당에 봉안하였다. 이리하여 각 사당에 흩어져 있던 임진왜란 순국·충렬 선위가 모두 충렬사에 모셔지게 되었고, 또 충렬사는 선열을 모신 사우(祠宇 : 신주로 모시기 위해 따로 지은 집)과 후학을 가르치는 서원을 갖추어 겨레와 민족 그리고 향토를 위해 심신을 닦는 도장이 되었다.
광복 이후는 서원과 사우를 곧 보수하려 하였으나 정국의 혼란 속에서 한동안 뜻을 펴지 못하고 있다가 1976년 5월부터 1978년 7월까지의 정화공사에 의해 낡은 사우가 헐리고 현재의 규모로 대대적으로 정화한 후, 부산지방에서 순절한 모든 선열의 위패를 직책 또는 증직의 순서에 따라 91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또한 매년 봄 2월과 가을 8월 중정일(中丁日 )에는 (사)안락서원 충렬사에서 제향이 올리고 있다.
한편, 5월 25일에는 부산시민의 정성이 모아진 제향이 올려지고 있다. 또한 경내에는 기념관이 있어 임진왜란 당시의 전황을 살필 수 있는 기록화와 선열들의 유품, 서적 등 99점을 소장 및 전시를 통하여 선열들의 정신을 기리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교육자료로 제공하고 있다. 충렬사기념관의 관람시간은 하절기(3월-10월)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11월-2월)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연중무휴 개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