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남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살고 있는 고송삼 할아버지. 왼쪽은 1935년 보통학교 시절 할아버지가 광주로 떠난 첫 수학여행 때 기차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1935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난 황태순은 해방이 되고 1년 뒤 11살이라는 늦은 나이로 오천국민학교에 입학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진 지 열흘 만에 온 식구가 대구로 피난을 떠났다. 1968년 농사가 전망이 없자 누이가 살던 대구로 가서 막노동 인부로 일했다. 중동 취업 붐이 불기 시작하던 1979년 자녀 학비를 벌기 위해 사우디 담만항에서 하역인부로 일했다. 그곳에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1년2개월가량 일하다 귀국했다. 사우디에서 돌아온 뒤 공장 건설현장 등지에서 닥치는대로 일하다 2005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건강을 회복해 현재는 텃밭 가꾸기와 낚시 등으로 소일하며 부인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있다'.

'고송삼은 보통학교 5학년이던 1935년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난생 처음 기차를 탔다. 현재의 전남 영암군 삼호읍에서 동력선을 타고 목포로 건너간 다음 광주행 기차를 탔다. 광주에서 전깃불을 처음 보고 빵도 처음으로 사먹었다. 기차 앞에 모여 앉아 기념촬영도 했다. 2박3일 일정에 2원씩 냈는데 여학생은 둘뿐이다.'

오는 28일까지 부산민주공원 작은펼쳐보임방에서 300여 점을 선보이고 있는 '사진으로 기록한 이 시대 우리 이웃-어제와 오늘3'은 역사사진 전시회다. '역사'라 하지만 거창하지 않다. 굵직한 역사적 사건, 인물들을 위주로 한 기록물이 아닌 우리 주위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책에 이름 한 줄 남기지 않았던 사람들. 하지만 이들 없이는 역사가 성립될 수 없었으니, 기층 민중이야말로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들이다. 이번 전시는 민중의 생활사를 구술과 사진으로 기록한 사료전이다. 해서, 전시장은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들로 가득하다. 사진 아래는 이들의 삶의 궤적에 대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황태순 고송삼 할아버지처럼 대부분은 일제 강점 시기 태어나 해방과 전쟁 등 산전수전을 다 겪고 지금은 시골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경북 예천 저우리와 경기도 광주에서 나들이를 즐기고 논일을 하는 어르신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섹션도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사진가 엄상빈과 일본 이이다 테츠의 작품 60여 점도 선보이고 있다. 엄상빈은 강원도 속초 아바이마을을, 이이다 테츠는 1980년대 도쿄 고토구와 오오타구, 가나카와현 가와사키시, 사미타마현 가와구치시의 기계공장 노동자와 공장 주위 마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출품 사진들은 현재 영남대 전북대 등 5개 대학이 참여하고 있는 '20세기 민중생활사연구단'의 작품이다. 2002년 8월 결성된 연구단은 40여 명의 인문학자들와 사진가로 구성돼 있으며 지역별 민중의 개인사를 구술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이 사업은 매년 전시회와 책으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전시회는 2004년 4월 시작한 이래 올해로 3번째이며, 구술집과 사진집은 그간 모두 40권이 발간됐다. 전시를 기획한 연구단 문애리 씨는 "일상 민중생활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를 구축하자는 취지의 사업"이라며 "역사를 남기지 못한 채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세대에 대한 예의이며 후손에게 뿌리를 보여주는 배려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면 왼쪽에 '여러분께, 여러분의 부모님께 일어났던 일을 직접 기록하세요'라고 적힌 거대한 연표가 있다. 연표 위에 누군가 "2008년 8월 ○○○와 ○○○ 전시장 다녀가다"라고 써놓았다. 이처럼 지극히 사소한 일도 이미 역사인 것이다. (051)790-7400

 

-국제신문 8/20 이선정 기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