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부산' 80~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도큐멘타 부산Ⅲ'전, 7월17일까지 시립미술관

이데올로기의 충돌과 비엔날레 탄생과정 증언

미술은 시대의 거울이다. 시대 상황을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반영함으로써 시대의 증언을 담았고, 시대의 징후를 포착해 냈다. 1980년대를 회상해 보자. 전두환 정권의 등장으로 민주화 열기는 꺾였고, 이에 따라 이념 세례를 받은 청년들이 화염병과 각목으로 무장하고 대규모 시위를 벌이던 시대였다.

 

이때 국내 미술계에도 이념성이 강한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치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에 물고기 떼가 번성하듯이 이데올로기들이 맞부딪쳐서 싸운 현장에서 시대의 아픔과 증언을 형상화한 문화가 피어난 것이다.

'도큐멘타 부산Ⅲ'전에 참가한 양호규씨의 '터'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1980~90년대의 이런 시대상을 반영한 '도큐멘타 부산 Ⅲ'전이 오는 7월 17일까지 열린다. 5개 섹션으로 구성돼 미술 언어에 사회 의식을 담은 작품과 자료들이 선보이는 것과 동시에 부산 미술만의 특성이 살아 있는 비엔날레의 탄생 과정과 형상미술에 대한 증언이 펼쳐진다.

▲새로운 미술문화 형성-사인화랑=오늘날 대안공간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사인화랑'. 김응기 박은주 예유근 정진윤 등 4명의 작가들이 부산 미술의 활성화와 작가 지원을 목표로 1984년 만들었다. 이들은 각종 기획전시와 기관지 '미술통신' 발행, 작가와의 대화, 여름 미술캠프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면서 부산 미술 담론 형성에 많은 기여를 했다.

▲삶의 이야기들-형상미술=형상미술은 부산에서 발생한 미술경향으로는 최초로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다. 직접적인 사회적 의식의 표출보다는 개인적인 감성을 실존적, 혹은 해학적인 표현 방식으로 드러냈다. 안창홍 이태호 최석운 김응기 정진윤 김미애 박종선 김난영 등이 대표적인 작가다.

▲개인과 사회 사이-그룹 '해빙'과 개별 작가들=1980년대가 '이념'과 '역사'라는 거대 서사를 정점으로 움직였다면 1990년대는 그 반작용으로 '개인'과 '소비문화'의 미시서사로 하강했다. 90년대 초반 부산 미술계에는 당시 시대를 풍미한 민중미술의 표현법과 구별되는 일련의 작가들이 등장했다. '해빙' 그룹이 대표적으로 심점환 이석금 김성룡 이인철 방정아 등이 주요 활동 화가였다. 이들 화가의 작품에서는 개인과 사회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읽어낼 수 있다.

▲사회변혁운동으로서의 미술=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는 뭐니뭐니 해도 민중미술 경향이 대세를 이룬 시절이었다. 부산 미술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산물들이 각종 집회 현장에서 걸개그람, 만장, 영정 등의 시각물로 생산됐다. 1987년 '그림패 낙동강'이 탄생했고, 좀더 조직적인 단체 형태로 '부산미술운동연구소'가 만들어졌다. 1995년 통합단체인 가마골미술인협회가 발족했고, 2000년 부산민족미술인협회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령 학예연구관은 "이번 전시는 부산의 현대사를 기억하는 장년층들에게는 당시를 회고하고 역사를 재구성해 보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며,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역사적 지식을 습득하고 부산 미술에 대한 애정을 가져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