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화랑이 20일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새 둥지를 틀었다. 지상 4층 건물에 거친 콘크리트로 외벽을 장식한 조현화랑은 다양한 야생화와 수목으로 조경을 해 달맞이 언덕의 새로운 명물이 되고 있다.

개관기념전은 김종학 초대전이다. '설악의 사계를 그리는 화가' 김종학(70)이 그린 천진난만한 들꽃과 눈 쌓인 겨울 설악 풍경은 자연을 잉태해 산고를 거쳐 낳은 작품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 한국 최고의 목기 수집가로 통하는 그의 골동품 일부가 전시돼 화가의 영감의 원천과 미적 감각을 느껴볼 수 있다.

19일 만난 노 화가의 손톱에는 물감 자국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와글와글'하게 꽃그림을 그렸다고 표현한 그는 설악산이 천국이라며 천진난만한 웃음꽃을 피웠다.

꽃그림을 잘 그리기란 쉽지 않다. 조금 삐끗하면 누굴 따라 그린 것 같고, 팔기 위해 그린 것 같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그는 "첫번 째 아내에게서 능력이 없다고 쫓겨났다. 그래서 1979년 귀양살이 하는 기분으로 설악산으로 들어가 자연을 만났다. 어느날 봄에 할미꽃을 보니 너무 아름답더라. 그래서 남 눈치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고, 그려보자는 심정으로 꽃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꽃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그는 추상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의 작업 속 대부분의 모티브는 작가가 늘 지치지 않는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자연에서 비롯된다. "설악산에 살아보니 낙원이 따로 없더라. 그림 그리다 막힐 때면 완전 무장한 채 칼 하나 들고 숲 속으로 들어간다. 숲속의 꽃들을 기억해뒀다 자연에 대한 감동을 재구성해 드로잉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휘갈기고 있다."

	조현화랑

그는 특히 토종꽃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그래서 5000평에 달하는 설악산 집에 정원을 가꿔 직접 꽃을 재배하고 밭을 가꾼다. 맨드라미 엉컹퀴 도라지 해바라기 나팔꽃과 매일 대화를 나누며 원초적이고 생명력이 느껴지는 화면을 선명하고 화려한 원색으로 재현한다. 그는 "화가 날때 붓을 들면 그림이 더 잘 된다"며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면 재미가 없고 자기만의 배열 방식으로 구현해 새롭게 그려야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통민화 보자기 자수 목기 등 골동품을 많은 돈을 들여 구입한다. 그 속에서 한국인 고유의 미를 파악할 수 있고 그것을 모티브 삼아 20여 년에 걸쳐 너무 평범해 진부할 수도 있는 풍경과 꽃을 자유분방하게 그려 독창적인 화풍을 창출했다. 꽃과 나비가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연두색 양복을 입어 한껏 멋을 낸 그는 "앞으로 정물화와 조각에 도전해 보고 싶다"며 "할아버지가 시인이셨는데 화가는 60부터라고 했다. 옆 뒤 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면 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의 세계를 개척해 왔다. 세상 눈치와 속세의 평가를 무시하고 예술가의 길을 고집하는 것이 살 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전시는 7월31일까지.

(051)747-8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