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의 세기' 49人의 위대한 삶 ...20세기를 위한 묘비명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돌베게·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1만3천원

"그들을 추모·기억하는 일이 21세기 우리의 과제여야 한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에른스트 톨러, 바실리 칸딘스키, 살바도르 아옌데, 에르네스토 체 게바

라, 프란츠 파농, 사에키 유조, 안중근, 김산, 윤이상…. 웬만큼 세상사에 시선을 두고 산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이름들. 자, 그렇다면, 이들의 공통점은? 서경식(56). 재일조선인 2세로 도

쿄게이자이대학교 현대법학부 교수. 지난해 출간된 '디아스포라 기행'으로 국내 식자층의 주목을 받

은 그는 그 공통점을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먼저 고민할 것은 '20세기'다. 20세기? 세계적으로는, 식민지 지배, 두 번의 세계대전, 극심한 좌우 냉

전, 파시즘이 있었고, 테러와 다국적 기업의 수탈, 대규모 환경파괴는 지금 진행 중이다. 우리 상황도

그에서 자유롭지 못해 일제강점, 6·25전쟁, 군사독재, 산업화와 재벌의 지배 등이 나타났다.

그런 20세기의 모습들은 사람들을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서 폭력적으로 내쫓았고, 보금자리를 박탈당

한 사람들은 고통과 비애로 몸부림쳤다. 그래서 독일 출신의 유대인 여성철학자 한나 아렌트

(1906~1975)는 20세기를 '난민(displaced persons)의 세기'라고 불렀다.

그럼, '온몸으로 살기'는 무엇인가.

'살기'를 보기에 앞서 '죽기'를 보자. 스페인 극작가 로르카는 스페인 내전 와중인 1936년 8월 극우정

당 부대에 체포돼 총살당했다. 그 외에도 칠레 정치가였던 아옌데, 독일 극작가 톨러, 쿠바 혁명가 게

바라, 조선인 혁명가 김산 등은 대부분 사형이나 전사나 암살, 자살 등으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다.

죽음 중에서는 아주 '선명한' 죽음이다. 온몸으로 살았기에 피할 수 없었던, 선명한 죽음이다.

서 교수는 온몸으로 사는 것은 노스탤지어를 잃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노스탤지어는 막연한

회고나 향수가 아니다. 폭력에 대항하고 사람들의 고통과 비애를 에워싸는, 훨씬 적극적인 개념이다.

그는 말한다.

"시간의 흐름은 많은 사람들의 희망, 싸움, 고뇌, 환희를, 다시 말해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을 빠르게

과거의 것으로 만들어간다. 그것만큼 인간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 … 권력자나 강자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라'라는 말로 자신의 정당하지 않은 행위를 감추고 부당한 권익을 기정사실화하려 한다.

노스탤지어란 그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정신을 가리킨다."

그런 정신을 갖고 20세기를 온몸으로 산 사람을 서 교수는 모두 49인으로 간추려 모았다. 우리나라의

김구와 윤동주, 김지하, 박노해처럼 널리 알려진 인물들도 많지만 의외로 국내에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사람도 많다. 일본인으로 미국 요리사로 일하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전사한 잭 시라이(1900?

~1937)가 그렇고, 1971년 학원침투간첩단사건으로 두 아들이 투옥된 뒤 독재에 항거하다 투사가 된

어머니 오기순(1920~1980) 등이 또 그렇다.

이탈리아 출신 아나키스트로 미국에 이민해 노동자로 살다 1927년 살인누명을 쓰고 처형된 니콜라 사

코와 바르톨로메오 반제티. 당시 '빨갱이 사냥'에 몰두한 미국정부의 사법살인으로 비난받았던 이 사

건에서, 반제티는 사형집행 하루 전 사코의 아들에게 편지를 남긴다. "네 아버지의 무고함을 잊지 말

거라. 아버지의 의연하고 고결한 태도를 배워라."

결국 오늘날 현대인들이 해야할 일은 반제티의 그런 당부를 잊지 않는 것일 테다. 서 교수는 "그런 이

들을 추도하고 기억하는 일, 그들의 묘비명을 세우는 일이 21세기의 과제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부산일보 10월 6일 임광명기자 kmyim@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