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한 고전? 편견을 버려라

천년의 우리소설 / 박희병·정길수 편역

 
17C '최척전' 등 번역소설집...문학성에 재미 더해 감동 두 배

 

 

한국 고전 소설? 권선징악, 해피엔딩, 황당무계. 이 범주를 벗어나진 않을 테지. '우리 것은 좋은 것이

여'라는 의무감 아니라면 누가 읽을까?

17세기 한문소설인 '최척전'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조선 중국 일본 베트남, 이렇게 네 나라를 작품

무대로 삼고 있는 스케일도 그렇거니와, 전쟁이 가져온 이산가족의 애틋한 사연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문학성도 만만찮다.

전쟁의 여파로 중국과 일본에 떨어져 있던 부부가 베트남에서 극적으로 상봉하는 장면, 죽은 줄 알았

던 아버지와 아들이 포로가 되어 이국땅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대목은 이 소설의 백미다. 정유

재란으로 중국 상인과 떠돌던 남편 최척, 왜군의 포로가 된 아내 옥영이 우연히 정박하게 된 베트남의

한 포구. 신세를 한탄하며 불었던 최척의 퉁소 소리가 선창을 떠돌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부 사이

에 나눴던 시 한 수를 옥영이 읊으면서 부부가 만나는 장면은 한 편의 영화다. 심청을 만난 심봉사보

다, 옥중에서 이도령을 만난 춘향보다 가슴 저미는 상봉이다.

왜병장이 옥영을 살뜰히 살핀 것도 모자라 몸값을 주겠노라는 제의를 일축하고 남편에게 보낸 것이

나, 오랑캐로 여겼던 후금의 병사들에 대해 성품이 정직하고 가렴주구를 일삼지 않는다고 서술한 대

목에선 왜와 후금에 적대적이었던 사회분위기와 사뭇 다른 작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옥영이 최척

을 처음 만날 때 먼저 당당하게 혼인을 청하는 장면, 아들을 중국 여인과 혼인시킨 국제결혼 역시 파

격적인 설정이다.

고전이 상투적이란 편견을 이래저래 깨트리는 소설이다. 이만하면 우리 것이니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애국심 마케팅에 호소하지 않고도 작품성만으로 충분히 읽힐 만하다는 자신감도 든다.

'최척전'은 서울대 박희병 교수와 조선대 정길수 교수가 편역한 '천년의 우리소설' 시리즈물에 포함된

소설 중 한 편. 고전소설은 별 재미없고 감동도 없다는 편견을 확 바꿔놓겠다고 작심하고 내놓은 시리

즈다.

1권 '사랑의 죽음'에는 한달 동안이나 여인의 집 앞에서 밤을 지새운 심생의 이야기를 다룬 '심생전'을

시작으로 4편의 애정소설을 담았고, 2권 '낯선 세계로의 여행'에는 볼품없는 거지가 실은 조선 최고의

신선이었다는 '장도령'을 비롯해 8편의 짧은 소설이 실렸다. '최척전'을 비롯해 16~17세기 원치 않았

던 전쟁에 휘말렸던 시대를 배경으로 쓴 '김영철전' '강로전' 등 4편은 3권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서'라는 제목으로 묶여 나왔다.

박희병 교수가 지난 2005년 83편의 소설을 모아 펴낸 '한국 한문소설 교합구해'를 바탕으로 번역했는

데, 신라 말기인 9세기부터 조선후기인 19세기까지 '천년 동안'의 우리 소설을 가려뽑은 시리즈로 앞

으로 16권까지 나올 예정이다. 돌베개/각권 9천500원.

 

-부산일보 9월 29일 이상헌기자 기사 ttong@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