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규(사진)가 돌아왔다'는 말로 시작해보자.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그를 설명하려면 '돌아왔다'는 말이 필요하다.
소설가 정태규 씨가 두번째 소설집 '길 위에서'(산지니)를 펴냈다. 정 씨는 199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당시 지역 문단은 탄탄한 솜씨를 선보인 이 신인 소설가의 출현에 주목했다. 그가 1994년 첫 소설집 '집이 있는 풍경'을 엮어냈을 때 문학계간지 '창작과 비평'은 한 분기 당 전국에서 나온 소설책 가운데 단 3권에만 지면을 할애하는 평론 코너에서 부산의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그의 첫 소설집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 뒤 13년, 그가 두번째 소설집을 펴낸 것이다. 후속 작품집이 늦은 데 대해 "열심히 하지 못했고 다른 데 정신이 팔렸던 탓"이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정 씨는 그 동안 문학박사 학위를 땄다. 지역문단에서도 이런 저런 직책을 맡으며 뛰었다. 그러나 그가 소설 쓰기를 잊거나 소홀히 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이번 작품집에 실린 작품은 10여년 전 것부터 최근 것까지 탈고한 시기가 다양합니다." 남몰래 연마하며 꾸준히 써왔다는 얘기다.
"첫 소설집과 비교하면 '길 위에서'에서는 문학적 상상력을 여러 유형으로 변주할 수 있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수록작 '구글어스'를 보자. 아내가 이상해졌다. 불안에 빠져 칼을 모두 치우고 거식증과 폭식증을 오간다. 공황장애가 온 것이다. 불안과 스트레스에 갇혀버리는, 전형적인 현대병이 공황장애다. 남편은 구글어스에 빠져든다. 자신의 집과 동네를 포함해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의 위성사진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구글어스다. 남편은 구글어스로 가상의 여행을 펼치면서 탈출구를 찾는 것이다. 현대인의 일상을 짓누르는 불안을 예리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좌판에서 이소룡 주연의 '용쟁호투' 비디오를 발견하고 어릴 적 친구를 기억해내는 '브루스 리를 추억함'이나 사방이 막힌 방에 갇혀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로 이뤄진 '감춰진 머리', 17년만에 만난 거지 노인의 모습을 통해 시대적 비애를 그려내는 '육교를 건너서' 등은 사회·역사적 상상력의 맥락에 서 있다.
'시간의 향기' '솔베이지의 노래' '길 위에서' 등은 사랑과 삶이 일상에서 일으키는 불꽃들을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는 작품들이다. 모두 9편을 수록했다. '정글게임'처럼 현대 인터넷 문명의 음지를 단편 소설 한편 속에서 날카롭게 형상화한 작품도 있다. 작가 특유의 끈끈한 휴머니즘을 바탕에 깔면서도 이를 다채롭게 변주해낸 솜씨가 잘 느껴지는 소설집이다.
저자 : 정태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