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에서 아르헨티나로 건너간 항만노동자, 밀수꾼, 거리의 여인들에게서 시작된 음악 탱고. 삶이 힘겨운 그들에게 탱고는 격정의 한풀이와 함께 자유에 대한 도취를 가능케 했다. 하지만 그런 아르헨티나의 탱고가 다시 유럽에 전해졌을 때 유럽 상류사회는 취기 어린 음울한 아르헨티나의 탱고를 자유의 표현이라기보다는 허무와 체념의 퇴폐적 표현으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밝고 매끄러운 멜로디 중심의 새로운 탱고를 만들어냈다. 자유의 뜻보다는 음악 본래의 원칙에 어울리는 탱고를 강조한 것이다.
세상에는 밝음과 함께 어두움이 있고 아폴론이 있는 동시에 디오니소스도 함께 존재한다. 아르헨티나 탱고와 유럽의 탱고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순전히 감상자의 몫이듯, 아폴론의 삶을 추종하든 디오니소스처럼 살든 그것은 그 자체로 세상살이의 한 모습이며 인간적이다. 문제는 어느 한쪽이든 온전히 그 삶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폴란드의 작가 슬라보미르 므로제크의 1964년작 희곡 '탱고'는 그런 질문을 던진다. 모두 규범·질서 혹은 자유·투쟁을 외치는데 어느 쪽의 가치든 온전히 지켜가며 살고 있는지 묻는다.
한 가족이 있다. 젊은 아들 아더. 원칙과 전통을 중시하는 집안의 중심이다. 그의 사촌이자 약혼녀인 알라. 도덕적 억압을 거부하는 열정의 여인이다. 아버지 스토밀은 항상 자유와 저항을 외치는 노쇠한 진보주의자다. '콧수염이 있는' 하인 에디도 있다. 에디는 무슨 주의나 이념보다는 본능적이고 무식하며 힘을 신봉한다. 아더는 원칙과 규범에 따른 알라와의 결혼식을 통해 집안의 기강을 세우려고 하지만 그 뜻은 가족은 물론 알라에게까지 미치지 못하고 스스로 파멸해 난동을 일으키다 에디에게 살해당한다. 가족들은 잠시나마 아더를 추모하지만 곧 에디의 힘에 굴종하며 혼돈과 무질서에 빠져든다. 마지막 장면에서 에디는 승자의 미소를 띠며 자신에게 복종하는 이들과 함께 '라 쿰파르시타'에 맞춰 탱고춤을 춘다. 결국 므로제크는 원칙과 질서, 자유와 저항의 가치보다는 폭력과 권력에 굴종하는 인간 군상의 나약함을 지적한 것이다.
이 므로제크의 '탱고'를 부산의 극단 시나위가 '프로젝트 팀 이틀'과 공동으로 오는 15~25일 액터스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평일 오후 8시, 토 오후 4·7시, 일 오후 3·6시. 월 공연 없음. 연출 강태욱. 출연 김혜정, 백길성, 김태훈, 김성경, 반필우, 장민 등. 051-554-5244.
기간 : 11/1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