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 박유희 영화평론가 '음지 인생'서 다시 뭉친 왕년의 스타들 "과거의 영광 되찾는다" 올림픽 2연패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 실화 현장감·자연스러움 돋보이는 '팀워크 작품'
"음지 인생으로 전락한 왕년의 스타들이 모여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다."
이러한 줄거리는 무림을 떠났던 고수들이 다시 모여 난세를 평정한다는 무협물이나 극적인 인생 역전을 다루는 인생극장 등에서 흔히 취하는 '감동적인' 이야기 틀이다. 임순례 감독이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바로 이러한 이야기 틀을 가지고 있다.
올림픽에서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종목이지만 한국의 여자 핸드볼 대표선수들은 제대로 된 소속팀도 없이 생계를 위해 마트 종업원이나 식당 아줌마로 살아간다. 유일하게 지도자 코스를 밟아 국가대표팀의 감독 대행이 된 혜경(김정은)은 신인들로 구성된 대표팀의 전력이 약한 것을 보고 올림픽 2연패의 주역 미숙(문소리)을 부른다. 그러나 미숙은 남편이 진 빚 때문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다.
혜경은 끈질긴 노력으로 미숙을 팀에 합류시키는 데는 일단 성공하나 이번에는 이혼녀라는 이유 때문에 자신이 대표팀 감독에서 쫓겨난다. 대표팀에 남고 싶거든 선수 신분으로 잔류하라는 것이 위원회의 결정.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혜경은 올림픽 결승전에 결장했던 한을 풀고 싶다는 갈망 때문에 자존심을 접고 '대표팀 합류'를 결심한다.
이제 대표팀에는 미숙과 혜경을 비롯해 34세의 나이로 처음 대표선수가 된 정란(김지영)과 32세 노처녀 수희(조은지)까지 네 명의 노장 선수들이 포진하게 된다. 그들은 기혼자는 기혼자대로 미혼자는 미혼자대로 한국의 30대 여성 앞에 놓인 갖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에 나간다. 이제 그들 앞에 놓인 것은 승리가 아니면 패배뿐. 그들은 최후의 승리를 쟁취하여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맛보기 위해 뛰고 또 뛴다.
경기 장면 전까지는 자칫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이 영화의 전부라면 차라리 따뜻한 집에 앉아 TV의 휴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게 나을 것이다. 이 영화의 참맛은 그 자연스러운 흐름 속의 섬세한 결에서 나온다.
그것은 생생한 디테일과 현장감 있는 대사, 그리고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구현된 영화 속 인물들은 갖가지 재료의 맛이 살아있으면서도 잘 어우러지는 비빔밥처럼, 튀지 않으면서도 개성이 넘친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실패의 순간조차도 '우리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느낄 수 있게 몰입시킴으로써, '우리 인생'과 '최고'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성취는 남성감독이 놓치는 것을 포착할 수 있는 '다른 관점'과 그 '다름'을 고립시키지 않는 인생에 대한 통찰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여성 감독의 힘과 더불어 사람과 삶에 대한 임순례 감독 특유의 곰삭은 애정을 확인시켜준다.
배우들은 하나같이 이 영화가 '팀워크가 살아있는 영화'였다고 말한다. 현장의 팀워크는 이 영화의 진정성을 한결 높인다. 여배우들은 다른 배우보다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최고의 연기를 위해 매진하고 있다는 것이 화면에서도 묻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스포츠 영화인 동시에 프레임 안팎에서 여성연대를 이룬 드문 영화이기도 하다.
감 독 : 임순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