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화가는 화폭에 자아를 담아내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화가가 그린 인물상을 마주하는 느낌은 각별하다. 그림을 통해 예술가의 다양한 자아를 접하면서 사사로운 세계까지도 은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 해운대구 중동 달맞이 언덕에 있는 조현화랑이 오는 3월 30일까지 인물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작업을 해온 4명의 작가, 이선경 이소연 임자혁 유정현 씨를 초대해 '너, 나, 우리'전을 개최한다. 이들은 모두 30대의 신진 여성작가로 기성 세대의 화풍에 물들지 않은 신선함을 선사한다.

전시를 기획한 김애령 큐레이터는 "한국 화단에서는 작가 자신의 초상화뿐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 아이콘으로서 인물화가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면서 "하지만 최근 일군의 젊은 작가들에서 인물상이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고 있어 한자리에 모아봤다"고 밝혔다. 네 작가를 지난 22일 조현화랑에서 만났다.

자화상이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고 자신과 벌인 투쟁과 화해의 기록이다. 내면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생채기 투성이의 자기와 화해하는 일은 세상과 맞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숙명이다. 예술가들은 앞서서 각성의 거울을 들이대고 자신을 비추어본다.

신라대를 졸업하고 자화상만을 그리는 이선경(33)은 지역의 유망작가다. 그는 다중 인격, 자기 혐오, 자기 도취와 같은 모든 자아의 변종들을 가지고 붓질에 몰두한다. 이선경에게서 자화상 작업은 바로 '나' 속에 숨어 있는 수많은 '너'를 찾아내 갈등을 치유하고 화해하는 과정이다. 최근에는 초현실주의적 연출을 통해 잠재의식 깊숙이 숨어있는 환상을 그려내고 있다. 그는 "자기 분열은 죽을 때까지 계속 될 것이지만 자화상을 그리면서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가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과의 소통 경로를 찾게 된다"고 밝혔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활동하는 이소연(37)은 아름답고 기이한 자화상을 선보인다. 자신의 신체적 콤플렉스를 극대화해 만든 캐릭터를 다양한 배경과 소품으로 연출,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시대의 극히 일상적인 면모들을 놀라운 질감으로 표현한다. 유화를 고집하는 그의 회화는 명료하고 단호한 형태만큼이나 명쾌한 색채와 발색 기법으로 강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스스로를 '이미지 낚시꾼'으로 부르는 임자혁(32)은 일상에서 임의로 손에 든 드로잉 도구로 알 수 없는 이미지를 낚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서울대 미대 출신인 그는 5일 동안 부산에서 머물면서 조현화랑 벽면에 그가 선망하는 동물 '호랑이꼬리 여우원숭이'를 재미나게 그렸다. 부담 없는 재료인 테이프로 한 폭의 벽화를 완성했다.

독일 뮌헨 국립조형예술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유정현(35)은 독특한 감수성을 지닌 인물화와 꽃그림을 선사한다. 그의 인물화는 마치 박피된 피부처럼 얇게 그려져 존재의 불안·불편함을 그대로 전달한다. 그래서 '숨결' 같은 작품은 다소 기괴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존재론적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태생적인 두려움 공포 불안이 피부에 드러나, 인형인지 인간인지 알 수 없는 개체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들 네 명에게 서정주의 시 '자화상'에 나오는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는 구절을 인용해 '당신을 키운 것의 팔 할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불시에 던져봤다. 이선경은 '자기분열을 겪는 내면의 무수한 자아', 이소연은 '나', 유정현은 '내면의 불안', 임자혁은 '그리움'이라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 뻗어나갈 미래가 창창한 이들에게 '팔 할'이 무엇이 되었든 무슨 상관이랴. 무쇠를 녹여내는 거친 에너지로 화가의 운명을 짊어지고 갈 각오가 되어있는 이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051)747-8853

 

-국제신문 2/24 유창우 기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