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기행 주요 답사지 개요
전(傳) 구형왕릉
‘한국식 피라미드’라고 불리기도 하는 국내 유일의 피라미드형 돌무덤이다.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게리 왕산 북쪽 자락에 자리한다.
이 돌무덤은 ‘전 구형왕릉’으로 불리는데, 가야시대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仇衡)왕릉으로 알려져 있다. 구형왕은 싸우지 않고 나라를 신라에 넘겨준 때문에 일명 양왕(讓王)으로도 불린다. 나라를 넘겨준 한과 아픔이 독특한 돌무덤으로 남아있는 것일까.
이 돌무덤은 비탈진 산기슭에 잡석을 쌓아 만들었는데, 7단으로 이뤄진 높이 7.15미터의 독특한 구조이다.
전면 동쪽 4단에 작은 감실이 있는데, 너비와 높이가 각각 40센터미터, 깊이는 68센티미터이다. 전 구형왕릉을 싸고 종래에는 석탑이라는 설과 왕릉이라는 두 설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근년에 김해김씨 문중에서 구형왕릉으로 확정, 이 일대의 성역화 작업을 벌여왔다.
사적 제214호 문화유적이다.
수정궁(水晶宮)과 류의태 약수터
전 구형왕릉에서 완만한 산비탈을 1.4킬로미터 거슬러 오르면 잡초가 무성한 묵은 밭과 같은 곳과 마주친다.
‘수정궁 터’라는 작은 팻말이 세워져 있는데, 어디서 나왔는지 부도 2기가 덩그마니 서있을 뿐 궁궐터와 같은 흔적은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이곳은 가락국의 별궁으로 구형왕이 나라를 신라에 넘겨주고 이곳에서 기거했다고도 한다. 전 구형왕릉가 함께 가락국의 마지막 미스터리를 안고 있는 사적지이다.
수정궁에서 100미터 가량 더 거슬러 오르면 예부터 영험한 약수로 소문이 나 있는 당물샘터를 만난다. 지금은 이름하여 ‘류의태 약수터’이다.
류의태는 신의(神醫) 허준의 스승으로 자신의 시신을 제자에게 해부학 공부를 위해 제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약수가 류의태의 그 약수터인지는 의문이다. 이설이 더 많이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류의태 약수터’라는 이름은 산청군이 인근에 추진하고 있는 ‘산청 전통한방 휴양관광 단지’등과 함께 약초의 고장, 한방의학의 고장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듯하다.
그보다 이 약수터는 가락국 왕가 사람들의 이곳의 별궁 수정궁에 머물면서 건강을 돌보며 휴식한 것에 더 의미가 있겠다. 가락국 별궁을 왜 이곳에 지었는지도 약수터로 하여 하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산청, 함양사건 추모공원
6.25 전란중이던 1951년 2월 7일 육군 11사단 9연대 3대대는 지리산 공비토벌에 나서면서 이른바 견벽청야 작전을 전개했다.
산청군 금서면 가현, 방곡 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점촌 마을, 유림면 서주 마을 등에서 양민 705명이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떼죽음을 당했다. ‘산청, 함양사건 추모공원’은 군부대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양민 705명의 영령들을 모신 합동 묘역이다.
경남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722번지 일원에 2001년 12월 합동묘역 조성사업이 착공되어 4년에 걸친 공사로 거의 준공단계에 이르렀으나, 희생자 명예회복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아 아직 준공식은 못 가지고 있다.
위령탑-원혼소생상과 희생자의 상, 비탄의 벽, 고통의 벽, 그리고 위패 봉안각과 회양문, 복에관, 영상실 등이 있고, 사건 개요를 압축하여 담은 영상물도 볼 수 있다.
벽송사 서암정사
‘21세기의 불국정도’라고 불리는 서암정사는 원래 벽송사의 부속 암자였으나, 지금은 사찰로 승격했다.
한 스님의 원력으로 바위를 뚫어 극락보전을 이룬 곳이다. 벽송사 조실 원응 스님의 1989년부터 10여년 동안 불사를 일으켜 굴법당 사방 벽과 천정에 화엄경을 조각으로 새긴 것으로 유명하다.
굴법당 극락전의 바위 조각들은 나이 33세의 홍더고히님이 91년에 서암에 들어와 10여년 동안 햇볕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며 조각에 전념하다 44세가 되어서야 제대로 햇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비로전 등에도 거대한 바위에 불상 등을 새겨놓았다.
서암정사는 원응 스님이 화엄경 80권 60만자를 12년 동안에 걸쳐 금니사경으로 옮겨 쓴 ‘화엄경금니사경전’이 유명하다.
굴법당 조각과 금니사경은 인간의 무한한 집념과 신앙심의 결정판이다. 원응 스님의 굴법당 조성과 화엄경 금니사경은 6/25 전란을 전후하여 희생된 원혼들을 위로하고 남북과 동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