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지리산 대원사&내원사-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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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5 584
 

<제5회 봉생역사문화기행 참고 자료>



♠ 단성향교(丹城鄕校)


향교는 고려, 조선시대에 지방에 있던 문묘(文廟)와 그에 속한 관립(官立)학교로 중앙의 사부 학당과 같은 역할을 했다.

단성향교는 1127년 창건되었는데, 학당부인 명륜당의 독특한 형태가 돋보인다. 또 경남유형문화재 제139호인 ‘단성 호적장적’을 보관하고 있다.

1862년 2월4일 단성 농민들은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에 저항하여 봉기하는데, 단성향교 출신으로 구성된 ‘향회’가 구심점이 되었다. 단성민란은 열흘 뒤 발발한 진주농민항쟁 등 전국에서 37차례에 걸쳐 벌어진 ‘임술 민란’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 단성향교로 향하는 봉생역사기행회원들

 

 

♠ 목면시배유지(木棉始培遺址)


고려 말 문익점(文益漸)이 1363년(공민왕 12년)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 목화씨를 붓대 속에 숨겨 가지고 와서, 장인인 정천익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출생지인 단성 땅에 재배하게 했다. 시배(始培 )의 터전인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는 배양(培養)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1965년 4월 ‘삼우당(三憂堂)선생면화시배사적비’가 세워졌고, 문익점 선생의 효행을 기리는 ‘삼우당효자비’와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부민각’, 그리고 1996년에 세운 ‘문익점면화전시관’이 있다.

▲ 문익점 면화 전시관

 

 

♠ 덕천서원(德川書院)


1576년 남명 조식(南冥 曺植)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사림들이 그가 강학하던 자리에 세운 서원으로 경남유형문화재 제89호이다. 1609년(광해군 1년) 현판과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아 사액(賜額)서원이 되었으나 홍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30년대에 복원되었다.

사적 제305호 조식 유적지 안에 위치, 산천재, 세심정, 남명 묘소, 남명기념관 등과 더불어 남명의 높은 학덕과 고결한 정신을 빛내주고 있다.

 


▲ 산청 덕천서원, 문화교육을 받고 난 후의 초등학생들

 

 

♠ 내원사(內院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신라 말 무염대사(801~888)가 창건했다. 창건 당시 이름은 덕산사(德山寺)였다. 그 이후 언제 어떻게 내원사로 이름이 바뀌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1959년 3월 홍원경 주지가 중창, 꾸준히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로자나불상은 776년 신라 혜공왕 2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물 제1021호이다. 또한 내원사 삼층석탑은 1950년대 도굴꾼에 의해 옥개석이 부서지고, 상륜부가 사라진 것을 1961년에 홍진석이 복원하였다. 고려 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이 석탑은 보물 제1113호이다.

 

▲ 내원사 3층 석탑


♠ 대원사(大源寺)


548년(신라 진흥왕 9년) 연기조사가 창건한 대원사는 화재로 폐허가 된 것을 1955년 법일(法一 )스님이 비구니선원으로 중창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참선도장이다. 수도하러 온 여승들의 거처로 쓰이는 절 뒤편 사리전 앞에 보물 제1112호인 대원사다층석탑이 있다. 출입제한구역이므로 탑은 담장 너머로 볼 수밖에 없다.

대원사는 ‘한국의 명수 100곳’의 하나인 대원사계곡을 끼고 있는데, 용소 소막골 망덕재 도장골 등 예부터 여러 전설이 딸린 이름의 명당과 골짜기들이 주변에 산재한다.

 


▲ 대원사 일주문 및 대원사 경내


 

♠ 맹세이골 자연관찰로


대원사 조금 못 미친 곳의 한 골짜기가 지난날 맹수가 들끓었다고 하여 ‘맹세이골’로 불린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이곳에 자연관찰로를 조성, 지리산에 서식하는 각종 산야초 등을 살펴볼 수 있게 해놓았다. 다양한 식물군은 일일이 표지판을 달아 친절하게 안내를 하고 있다(구체적인 것은 현장에서 직접 확인해 봅시다).

지난날 이곳에는 화전민들이 살았는데, 12명의 대가족이 살았다는 두칸짜리 토막(오두막)을 복원해놓았는데, 옛 사람들이 얼마나 어렵게 삶을 이어갔는지를 엿보게 해준다.

 

〔자료 안내〕

보다 구체적인 자료는 인터넷 사이트 ‘최화수의 지리산 통신’과 ‘내마음의 고향 지리산’ 에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