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지리산북서부권-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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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5 380
 
  

제3회 역사문화기행 자료집


  제1회 기행은 지리산의 인물(성철 종정, 남영 조식)과 지리산의 우상(성모석상), 그리고 지리산 마을(고운동천)을 살펴보기 위한 답사였습니다. 제2회 기행은 지라산이 간직한 비극의 역사를 찾아보았습니다. 나라(가락구)를 넘겨준 전 구형왕릉(돌무덤)과 양민학살사건의 한이 서린 ‘산청, 함양사건 추모공원’, 그리고 지리산 고혼들을 위로하고자 바위에 극락정토를 새긴 서암정사를 둘러보았습니다.

제3회 기행은 ‘지리산의 소리’, 특히 우리 판소리 자취들을 찾아보는것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 여섯 마당 가운데, <춘향가>아 <가루지기 타령>  주인공들으리 무덤을 찾아봅니다.
  •  만고열녀 성춘향과 천하탕녀 옹녀의 무덤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세요.
  •  판소리 동편제를 낳은 탯자리이자 명창 송흥록과 박초월의 생가 뜨락을  거닐어  봅니 다. 
  •  콩 세말을 지고 구룡계곡 폭포로 찾아들어 노래 한 바탕을 부르고 콩  한 알을 던져넣는 식으로 노래 수련을 했던 권삼득, 그래서 국창에 이른 그의 혼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 구룡계곡의 우렁찬 폭포수 소리를 들어보세요. 수많은 노래꾼들의 열정과  혼을 떠올려보면 더욱 좋겠습니다.

<주요 답사지 개요>


오도재


  함양에서 지리산으로 찾아드는 옛길, 삼봉산과 법화산 사이 해발 773m의 고개이다. 한 스님이 이 고개를 넘어가며 득도를 했다 하여 고개 이름이 생겨났다. 함양에서 가는 이 길을 지난 2003년 왕복 2차선으로 확포장, <지리산 가는 길>로 부르고 있다. 함양군은 오도재에 15억원을 들여 성문을 만들고, ‘지리산 제1문’이란 문패를 달 것이라 한다.

첫번째 고개 지안재를 오르는 길은 S자를 겹쳐놓은 형태로 ‘한국타이어’ CF에 나오고 있다.


  함양군은 오도재 일대가 판소리 <가르지기 타령>의 무대라면 변강쇠와 옹년 묘와 장승공원 등을 조성했다. 변강쇠, 옹녀 묘소는 아주 빈약하나, 그 앞의 나체 석상이 압권이다.

오도재 너머 전망대는 동쪽 하봉에서 서쪽 반야봉까지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백장공원-변강쇠, 옹녀 쌈지 공원


  남원사는 변강쇠, 옹녀의 전설이 깃든 백장게곡 입구를 쌈지공원으로 조성했다. <가루지기 타령>을 형상화한 각종 조각물과 장승이 숲을 이룬다. 이 계곡은 변강쇠와 옹녀가 기력을 보충했다는 득독골 설화가 서려 있고, 기묘한 형상의 음양바위, 근원바위, 수태바위 등도 자리한다.

경남 함양군과 전북 남원시는 서로 변강쇠, 옹녀와 인연이 깊다는 주장을 하며, 공원조성 등을 경쟁적으로 해오고 있다.


황산대첩비지


  황산은 고려말에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아직 왕이 되기 전에 도순찰사로 왜구와 싸워서 대승을 거둔 곳이다. 고려 우왕 6년(1386) 9월에 금강어구인 진포에서 최무선 부원수 등의 화포공격으로 퇴로가 막힌 왜구들은 충청도를 거쳐 경상도의 상주, 선산 등지를 휩쓸고 함양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지리산을 넘어 운봉 인월역에 주둔했다.

  조정에서는 이성게를 도순찰사에 임명하고 변안열을 도체찰사로 삼아 왜구를 토벌케 하였다. 이 때에 아지발도라는 적장이 있었는데 그는 15-16세의 소년으로 힘과 무예가 비범하여 머리에 철로 만든 투구를 서서 아무도 이를 해칠 수가 없었다.

황산전투에서 이성계가 화살로 그의 투구를 떨어뜨리고 이두란이 아지발도를 쏘아 죽이자 왜구는 완전히 풀이 꺾여 많은 포획물을 남기고 달아났다. 이로써 수십 년 동안에 걸쳐 백성을 못살게 하던 왜구는 운봉의 전추로 완전히 궤멸되어 다시 침범하지 않았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된 전투였다.

  조선 선조 10면(1577) 전라도 관찰사 박계현의 상소에 의해 호조판서 김귀경이 왕명으로 황산대첩을 칭송하는 비문을 짓고, 여성군 송인의 글씨로 비를 세웠다. 또한 별도로 운봉현감 박광옥이 구체적인 전투경과를 기술한 황산대첩사적비를 세웠다.

하지만 일제말기에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일본경찰에 의해서 비석이 폭파되어 파괴당했다. 이를 광복후 재건하였고 일제가 파괴한 비석도 파비각 안에 그대로 보존해오고 있다. 1972년에 다시 신석호에 의해 국문으로 사적을 기술한 기념비를 세웠다.



판소리 동편제 탯자리


  조선 순조 때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에서 태어난 송흥록은 민속음악 가운데 가장 느린 진양조를 판소리에 응용, 판소리의 표현 영역을 확대한 등 다양한 음악 기료를 사용함으로써 극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판소리를 완성시켰다.

  특히 <춘향가>의 ‘옥중가’ 중 ‘귀곡성(귀신 울음소리)’은 그가 창작한 독창적인 판소리 창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송흥록으로부터 출발한 동편제는 형의 고수로 지내다가 뒤에 형에 버금가는 명창이라는 소리를 들은 아우 송광록과 손자 송만갑이 대를 이어온 이후 계층과 지역을 초월한 광범위한 애호를 받는 예술로 부상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송흥록이 죽고난 뒤 무덤에서는 “내 소리를 받아가라”는 귀곡성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2002년부터 비전마을에 국악성지가 조성중이며, 송흥록 생가와 박초월 명창 고택이 복원되었다.



국창 권삼득 노래비


  조선 8대 명차의 한 사람. 안동 권씨의 양반 신분으로 소리꾼이 되겠다고 하여 덕석말이로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나 마지막 소원으로 노래 한 곡을 부른 끝에 풀려났다.

콩 세말을 메고 이곳 구룡계곡에 들어와 노래 한 바탕을 부르고 콩 한 알을 폭포에 던짐녀서 피나는 수련을 한 끝에 득음을 했다. 그의 소리 공부를 기리는 비가 육모정 앞 목포에 세워져 있다.


구룡계곡


  구룡계곡은 용호구곡 또는 구룡폭포 라고도 한다. 이처럼 이름을 달리 하는 것은 옛날 음력 4월 8일이면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군데 폭포에서 한 마리씩 자리잡아 노닐다가 다시 승천했다는 전설 때문이다.


  • 제1곡 : 주천쪽 지리산 국립공원 매표소에 조금 못미치고 있는 송력동폭포를 1곡이라하며, 이곳을 흔히 약수터로 불린다.
  • 제2곡 : 매표소를 조금 오르면 높이 5m의 암벽에 이삼만이 썼다는 용호석문 이란 글이 음각되어 있는 절벽 아래 흰 바위로 둘러싸인 못이 2곡으로 불영추라 한다.
  • 제3곡 : 육모정에서 300m 지점에 있는 황학산 북쪽에 암석층이 있는데, 이 암벽 서쪽에 조대암이 있다. 이 조대암 밑에 조그만한 소가 바로 4곡인데, 학들이 이 곳에서 물고기를 잡아 먹는다 해서 학서암이라 한다.
  • 제4곡 : 학서암에서 300m쯤 오르면 유난히도 흰 바위가 물에 닳고 깎여 반들거리고, 구시처럼 바위가 물살에 패여 있다. 또 거대한 바위가 물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가 하면 건너편 작은 바위는 중이 꿇어 앉아 독경하는 모습과 같다 하여 서암이라고 하며, 일명 구시소로 더 알려져 있다.
  • 제5곡 : 구시소에서 1km지점에 45도 각도로 급경사를 이룬 암반을 미끄러지듯 흘러내린 곳에 깊은 못이 5곡인 유선대이다. 유선대 가운데에 바위가 있는데 금이 많이 그어져 있기 때문에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때 신선들이 속세 인간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병풍을 치고 놀았다 하여 은선병 이라고도 한다.
  • 제6곡 : 유선대로부터 500-600M쯤 거리에 구룡산과 그 밖의 여러 갈래 산줄기에서 흘러내린 계곡 물이 여기에서 모두 합류한다. 그 둘레에 여러 봉우리가 있는데 제일 뾰족한 봉우리가 계곡물을 내지르는 듯하여 그 봉우리 이름을 지주대라고 하고, 이곳을 6곡이라 한다.
  • 제7곡 : 지주대로부터 왼쪽으로 꺾이면서 북쪽으로 1km 지점에 거의 90도 각도로  깎아지른 듯한 문암이라는 암석층이 있는데, 이에 속한 산이 반월봉이고 여기서 흘러내린 물은 층층암벽을 타고 포말려 비폭동이라 하며 이를 7곡이라 한다.
  • 제8곡 : 비폭동에서 600m쯤 올라가면 거대한 암석층이 계곡을 가로질러 물 가운데 우뚝 서 있고, 바위 가운데가 대문처럼 뚫려 물이 그 곳을 통과한다 해서 석문추라 하는데, 바로 이 곳이 8곡이다. 경천벽이라고도 부른다.
  • 제9곡 : 경천벽에서 500m 상류 골짜기 양켠의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있다. 멀리 지리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두 갈래 폭포를 이루고, 폭포 밑에 각각 조그마한 못을 이루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 두 마리가 어울렸다가 양쪽 못 하나씩을 차지하고 물 속에 잠겨 구름이 일면 다시 나타나 서로 꿈틀 거린 듯하므로 교룡담이라 하고, 이 곳이 바로 9곡이다. 아홉 마리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과 함께 일명 구룡폭포라 한다.


〔자료 안내〕


보다 구체적인 자료는 인터넷 사이트 ‘최화수의 지리산 통신’과 ‘내마음의 고향 지리산’에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